수업을 공개하는 것은 보통 선생님들에게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수업을 공개하는 행위 자체가 부담이라면, 이 후 내 수업에 대한 협의회(혹은 간단한 피드백)는 공포에 가깝습니다. 수업장학이나 컨설팅 등의 형태에 익숙한 나머지 참관하는 선생님들은 무언가 조언을 해주려 합니다. 혹은 이런 분위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아는 선생님들은 수업자에게 형식적인 칭찬들만 들려줍니다. 이 두 가지 대화 방식은 모두 수업자에게 별반 도움이 되질 못합니다.
수업 후 참관 선생님의 발언이 수업자에게 전달이 되려면 대화가 가능한 관계가 되어야 하고, 발언의 내용이 수업자에게 납득할 만 해야합니다.
어떻게 대화가 가능한 관계가 가능할까요? 이는 수업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날 수 있습니다. 수업자가 수업 공개를 자신의 성장과정으로 삼기를 원하고, 자진하여 수업을 열었다면 참관하는 선생님들은 이미 대화가 가능한 관계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이 경우 이 관계를 훼손시키지만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수업 공개는 원했지만 참관하는 대상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땐 더욱더 사전에 수업을 함께 준비하며 고민을 나눴던 친구가 필요합니다. 적절히 참관하는 선생님들의 말을 번역해주고, 때론 수업자 선생님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협의회의 주인공은 수업자 선생이 때문입니다. 이 선생님의 성장을 위해 우리가 함께 모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상처가 아닌 성장의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수업 나눔을 위해 개개인의 관계를 다시 재정립하자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도 수업공개라는 상황이 주는 맥락적 힘이 있습니다. 오늘 대화의 주인공의 입장에서, 그리고 참관하는 것 역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니 만큼 평소보다 수업자 선생님은 대화 가능한 관계의 범위가 넓어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참관자의 발언이 수업자에게 납득할 만하고 그로 인해 스스로 성찰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대화를 나누기 충분한 관계가 형성되게 됩니다.
따라서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가 중요해 집니다. 수업 나눔을 진행해보면 선생님들이 자신이 수업에 대해 해석한 결과를 주로 이야기 한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표현입니다.
오늘 수업은 이러이러한 점이 좋았어요.
오늘 수업은 이러이러한 점이 아쉬웠어요.
오늘 수업에서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거 같아요.
와 같은 표현들을 주로 사용합니다. 앞에 ‘수업을 공개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수식어와 함께 말이죠. 그럼 저는 선생님들에게 다시 물어보곤 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진 좋았던 점(아쉬웠던 점)을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질문은 받은 선생님은 다시 두리뭉실하게 답변합니다. 그럼 다시 한 번 물어봅니다.
혹시 뒷받침 할 만한 수업자나 학생들의 발언이나 기록 같은 것이 있었나요?
대부분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대부분 수업을 참관하면 교실의 맨 뒤에 앉아서 수업을 받는 학생처럼 열심히 수업을 듣습니다. 수업 중 교사의 발언에 학생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는 것이 아니고, 그 발언을 들은 참관 교사 자신의 반응을 기억합니다.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며 소통하는지 귀 기울이기 보다는 전체적인 학급의 분위기만을 멀리서 지켜봅니다. ‘학생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수업에 잘 참여하는게 인상적이었어요.’ 라는 참관교사의 평가는 뒤에 앉아서 보니 선생님이 과제를 제시하니 뭔가를 하는 것 같으면 할 수 있는 발언인 것입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이야기 나누는 행위 자체 보다, 그 대화의 질이 중요합니다. 실제 대화를 들어야 교사의 의도대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수업자는 미리 학생들에게 참관하러 오는 선생님들이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해 놓고, 수업자의 동선에 방해되지 않고, 학생들의 학습에 간섭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가까이에서 관찰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업에 들고간 참관록을 다시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수업자는 자신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최종적으로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경험이 있습니다. 참관하는 선생님들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실제 일어나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참관할 때 수업을 받는 학생 입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학생들을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모든 학생을 관찰하는건 불가능 합니다. 한 명의 참관교사는 2~3명, 혹은 한 모둠 정도만 주의깊게 관찰하면 충분합니다. 따라서 수업 참관을 준비할 때, 학생들의 좌석배치표와 함께 관찰학생들을 미리 지정해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준비가 되었다면 관찰 대상 학생들과 교사의 상호작용, 활동중에는 학생들간의 상호작용을 자세히 관찰합니다. 그리고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참관록에 적힌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경험이 진행되었다는 증거, 혹은 기대하는 경험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이 증거들은 사실에 입각해야 합니다. 자의적 판단이 아닌 수업 속 장면에서 실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증거는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경험의 진행 여부, 혹은 교사의 목표 실현 여부를 판단하기에 적합한 장면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장면들을 모으고 기록하는 일이 수업참관에서 해야할 핵심입니다.
이 때, 수업자 혹은 수업자가 제시한 학습상황이 학생들의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중점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사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은 자신의 수업 진행에 사용한 언행과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학습 자료입니다. 하지만 수업에는 제어 불가능한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아침에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나고 학교에 왔습니다. 그래서 기대하던 학습 경험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개인적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참관하는 선생님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수업자의 언행과 학생들의 반응의 상호작용을 주의 깊게 본다면 수업자의 특정 언행이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경험의 가능성을 높이거나 줄인다고 가정할만 한 게 보입니다. 또한 학습 자료를 대하는 학생들의 모습들을 관찰하면 학습 자료의 어떤 부분이 학생들의 참여에 기여하는지, 그렇지 못한지 추측해 볼 수 있게 됩니다.
수업을 참관하며 수업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가정과 추측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을 대화로 잘 나눌 수 있다면, 수업자에게 성장의 계기가 됩니다. 증거를 최대한 모으고, 그러한 증거를 통해 수업자가 납득할만한 가정과 추측들을 찾는 시도를 시작하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