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참관에서 우리의 주 관찰대상은 학생입니다. 학생을 관찰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으려면 교사의 언행은 귀에게만 맡겨야 합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는 학생을 관찰하고, 교사의 모습은 상당 부분 상상에 맡겨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학생을 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시선이 교사에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보통 수업의 주인공은 교사처럼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교실에서 교사는 가장 많은 대사를 가지고, 돋보이는 위치에 선 주연배우처럼 보이며,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몇 몇 조연 학생들과 다수의 엑스트라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주인공으로 향하는 우리의 시선을 의식적으로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주인공은 맡은 역할이 많아,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합니다. 수업 중 특정 학생과 대화를 나누면 나머지 모든 학생에 대한 주의는 거의 기울이지 못합니다. 수업한 교사는 수업의 아주 일부, 자신이 경험한 것중에서도 일부만을 알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미리 정해진 소수의 학생만을 관찰하는 참관교사는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를 보고 이를 수업자에게 알려줄 수 있는 중요한 사람 입니다.
실제 수업자는 자신의 모습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때론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목표를 이루기를 방해되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참여하고, 실수를 통해 배움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표도 자주 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발표할 학생을 선정할 때, ‘선생님이 마음에 드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학생에게 발표를 부탁하였습니다. 선생님의 태도는 상냥했고, 발표의 기회를 얻은 학생은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다 수업의 마지막 즈음 동일하게 한 학생에게 발표를 요청하였더니, 어떤 학생이 ‘쟤는 아까도 발표 했었는데…’라는 다소 불만섞인 혼잣말을 내뱉습니다. 마치 선생님에게 발표자로 선정되는 것은 선생님에게 인정받는 행위처럼 인식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후 이 장면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교사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행동의 대부분은 습관입니다. 본인 혼자서는 습관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기 힘듭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죠. 때론 이런 습관들은 자신의 목표실현의 장애물임에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기에 목표달성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목표를 축소하고 ‘이 정도면 됐지 뭐…’ 하고 현실에 안주해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교사가 지속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목표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목표에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수업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증거들을 찾아야 합니다.
좋은 증거는 수업자의 목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업자가 발견하지 못한 증거이면 더욱 좋습니다. 그러려면 수업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수업을 하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학생이라면 수업 속 교사의 언행이 그러한 목표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동시에 관찰하는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보아야 합니다. 수업 속에서 학생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학생들의 목소리만 들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행위를 관찰해야 합니다. 무엇이 학생이 펜을 들도록 만드는지, 무엇이 학생들이 배움을 주저하게 만드는지, 무엇이 학생들이 마주한 장애물을 넘도록 도와주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때론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추측이나 가정을 해야 합니다. 대신 추측(가설)을 사실과 구분하여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동일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사람들은 다른 추측이나 다른 가설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업자에게 추측을 사실인양 이야기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추측임을 밝히고 수업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묻는다면 수업자에겐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