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공개를 하기로 마음 먹으면, 수업하기 몇일 전부터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괜히 한다고 한 건 아닌지 후회도 하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교사에게 수업을 공개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만큼 수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수업을 공개하여 우리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수업자 선생님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수업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업을 나누는 협의회의 시간은 참관하는 선생님의 지식과 경험을 자랑하는 자리가 결코 아닙니다. 수업자 선생님이 스스로 수업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 자리 입니다.
우리가 수업을 준비할 때도 학생들에게 어떤 경험을 어떤 순서로 전달해야 우리의 수업 목표가 학생들에게 성취될 가능성이 높은지 고민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업을 나누는 협의회에서 교사가 성찰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어떤 경험들을 어떤 순서로 배치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 순서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수업자와 진행자의 관계, 협의회 참석 인원 수, 참관 선생님들의 수업 나눔의 경험, 협의회에 허용된 시간 등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구성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수업을 함께 나누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면 수업 속에서 교사의 목표에 부합하는 장면들을 먼저 공유해 보길 추천합니다. 교사의 의도에 비추어 수업을 바라보는 연습의 기회가 되고, 수업자에게도 부담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행자도 선생님들의 발언을 번역하여 수업자에게 전달하는 중간역할을 수행할 일도 줄어들어, 진행을 연습하기에도 도움이 됩니다.
참관 선생님의 숫자가 아주 적지 않다면(5명 이하) 참관선생님들을 3-4인을 한 모둠으로 편성하시면 좋습니다. 모둠으로 진행해야 참관한 선생님들의 발언기회도 많아지고, 수업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으니 보다 편안하게 발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금 더 수업 나눔의 경험이 있는 선생님들이 모둠안에서 나온 내용들을 공유할 때, 적절히 번역하여 전달하여 보다 협의회를 원활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교사의 의도에 부합하는 장면들은 단순히 수업자를 칭찬하는 일이 아닙니다. 수업자에게 배움이 일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의 의도에 부합되어 잘 수행된 장면 속에서 교사가 알지 못한 촉진 요인들을 발견해 주어야 합니다. 또는 학생들의 경험들을 면밀히 관찰하여 수업자가 사전에 예상하지 못했지만 의미있었던 학생들의 반응을 찾아 줄 수도 있습니다. 때론, 교사의 기대보다 좋은 경험들이 학생들에게 진행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경험은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확인해 주는 것도 수업자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놓치기 쉬운 부분은 학생들이 결과적으론 실패했을 때입니다. 학생들이 비록 실패하였더라도 과정에서 교사의 의도가 충분히 진행된 경우도 있습니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을 결과에 모두 도달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이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더라도 학생들이 경험을 진행했다면 이는 수업자의 수업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는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수업자가 의도한 경험을 수행했음에도 배움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 쉽게 생각하거나 쉽게 도출되는 원인은 학생의 개인적 특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기초학력이 부족하거나, 원래 잘 안하는 학생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처럼 학생의 기존 역량을 문제 삼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실제 교사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원인을 명확히 찾아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지상의 별처럼’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 방해, 학습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초등학교 3학년에서 낙제한 이샨은 전학을 가게 됩니다. 전학간 학교에서 새로운 선생님(아미르 칸)을 만나고, 이 선생님은 부모님을 찾아와 이샨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습니다.
선생님 : 이샨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버지 : 문제요? 그의 태도가 문제죠. 다른 뭐가 있겠어요? 공부, 생활 모두다요. 장난이 심하고, 반항적이죠. 한마디도 듣질 않아요.
선생님 : 저는 아이의 문제에 대해 묻고 있는데, 아이의 증상에 대해 말씀하시네요. 당신은 지금 아이가 열이 나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 열은 반드시 원인이 있어요. 그 원인이 뭐죠?
우리도 보통 이샨의 아버지처럼 대답하곤 합니다. 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났는지가 아닌 눈으로 쉽게 확인 가능한 증상만을 말하는 경우가 많죠. 증상이 나타나게 된 진짜 원인을 찾아야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증상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화를 내거나, 상벌점을 이용하거나 하는 방법은 상처를 안에서 더욱 곪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샨의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이샨의 증상에 대한 원인을 이야기 합니다.
선생님 : 이샨의 실수에서 패턴을 발견하지 못했나요?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들. (이샨의 공책을 보여주며) ‘D’대신에 ‘B’ 그리고 ‘B’대신에 ‘D’, 비슷해 보이는 철자를 혼동하고 있어요…
이샨의 선생님은 이샨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샨이 수업을 참여하지 못하는 원인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도 최대한 학생들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표면적 행동만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려는 노력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샨은 난독증이라는 조금 개인적 특성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참관하면서 만나는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비단 한 학생에게만 나타나는 경우가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비슷한 오류나 실수를 범하는 학생들이 분명 교실에는 여럿 존재합니다.
제곱근의 근사값을 계산기로 찾아보는 수업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를 찾기 위해서는 소수점이 포함된 수를 제곱하여 그 크기를 비교하는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교사의 의도에 맞게 교사가 제시한 경험을 충분히 진행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유형의 오답이 여러 학생에게 발견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중간의 모든 과정들을 충분히 수행했음에도 꼭 특정 과제에서 결론을 틀리게 내고 있었습니다. 원인이 궁금했습니다. 학생들이 어떻게 계산하고 있는지, 학습지에 끄적여 있는 계산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학생들은 0.3을 제곱한 값을 0.09가 아니 0.9라고 적은 것이 발견되었고, 비슷하게 순환소수 0.33333…의 제곱이 0.99999… 라고 적은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수업자는 수업을 설계할 때에는 이러한 오류가 발생될 것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로인해 학생들이 교사가 구성한 경험을 충분히 경험했음에도 원하는 결론을 내지 못한 것입니다.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수업자는 그저 학생을 탓하거나, 이유를 모른채 자신을 탓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인을 찾게 되었으니 그 해결책을 수업 준비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수업을 나누는 과정에서는 수업자에게 새로운 과제를 갖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수업에 대한 평가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수업의 과정이 교사의 성장과정이라면 수업자에게 과제를 도출하게 하는 것은 수업의 과정 중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업자가 스스로에게 과제를 부여하고 이 과제를 해결하기를 원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과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해결책에 대해 함께 탐구해 줄 수 있습니다. 이 때에만 한해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마음껏 공유하실 수 있습니다. 이 때 전달하는 도움은 수업자의 필요에 의한 것으로 수업자가 순수한 도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이 도래하기까지 하고 싶은 조언이 굴뚝같더라도 잠시 기다리며 수업협의회에 참여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