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업은 모든 선생님들이 꿈꾸는 것이고, 선생님들의 좋은 수업에 대한 생각은 모두 제각각 입니다. 우리는 보통 12년의 초중등 교육을 받고, 4년의 대학을 다니며, 누군가는 추가적인 수업을 받으며 아주 오랜 시간 수업을 경험했습니다. 더욱이 선생님들은 여전히 수업을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일평생을 수업과 함께 살아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수업에 대해서 만큼은 할 말이 많고, 각자 목표로 하는 좋은 수업의 모습이 어느 정도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선생님의 수업을 보면 언제나 아쉬운점이 발견됩니다. 100명의 선생님이 제 수업을 보신다면 아마 100명의 선생님 모두 제 수업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요소를 하나 이상씩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네, 전 100개가 넘는 부족한 수업을 하는 교사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좋은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좋은 수업이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 수업은 언제나 완벽하진 않지만, 성장의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나를, 그리고 내가 하는 수업을 성장시키는 수업, 그로 인해 더 나은 수업을 할 수 있게 내가 변화하는 수업을 진행중이며, 그러한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 믿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좋은 수업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습니다.
다음 4가지 요소를 가진 선생님의 수업을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업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노력의 결과를 수업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수업의 성과를 성찰해야 합니다.
저는 완벽한 수업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지만, 설령 완벽한 수업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수업을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수업은 정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끊임 없는 시도와 그로 인한 성장이 교사로서의 삶에 힘을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수업 이외에도 할 일이 많고, 제대로 된 수업을 시작하기도 힘든 환경인 학교도 존재합니다. 수업에 여러가지 변화를 시도해도 학생들은 반응하지 않아 좌절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실패가 반복되면 때론 반쯤 포기하고 교실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학기에 한 두 번씩 수업의 성장을 위해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 협의회를 진행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상처 뿐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우리는 어떻게 수업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성장하며 수업을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러한 고민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수업에 대해 고민이 있는 것은 내 수업이 좋은 수업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보통 고민이 생기는 이유는 수업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거나,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수업 속 고민은 무엇인가요?
잠시 읽기를 멈추고 ‘나의 수업 속 고민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고민이 떠올랐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보통 해결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내 수업의 고민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몇몇 학생들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래서 학생들을 참여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모둠 활동을 시키거나, 역할을 부여하거나, 상벌점을 주는 등 여러 방법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 중 하나 혹은 여러개를 동시에 수업에 적용합니다. 모둠활동을 시키고, 벌점을 부여했더니 학생이 친구의 답을 보고 배껴 적습니다. 그리고 잡답이 많아져 수업을 관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다시 모둠을 해체하고, 상벌점만 부여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학생들이 상벌점에 반응하는가 싶더니, 오래가지 않아 상벌점에 학생들이 무감각해지고, 다시 참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보다 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바꿔가며 적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합니다. 왜 그럴까요?
본인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민의 발생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이 욕구를 분명히 하고,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하여 최종적으로 교사의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고민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마치 고민은 빙산의 일각과 같습니다. 수면 아래의 보이지 않는 90%의 빙산이 바로 욕구이고, 보이는 10%가 교사의 고민으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고민을 잘 이해하려면 빙산 전체를 이해해야만 가능합니다. 물 속에 들어가 이리 저리 살펴보고, 때로는 깨뜨려 봐야 합니다. 계속 그 고민에 머물러 깊이 있게 성찰할 기회가 필요합니다.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거나, 성찰을 도와줄 수 있는 다른 사람과 깊이 있게 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성찰을 도와주는 사람은 쉽게 만나기 어렵습니다. 선생님들이 이 책을 읽으며 먼저 그러한 사람이 되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민을 나누면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진행됩니다.
A : 수업에서 몇 몇 학생들이 아무것도 안하는게 고민이예요.
B : 모둠활동으로 구성하면 어때요? 아니면 상벌점 같은거 도입해보거나요. 저는 상벌점 이용해서 수행평가 반영하니까 애들이 좀 참여하더라구요.
A : 네, 그런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이처럼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이러한 대화가 정말로 방법을 알지 못하는 저경력 교사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특별한 방법이 아닐 뿐더러, 자신의 상황을 해결할 근본적 대책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A교사는 속으로 ‘이미 모둠 활동은 해봤는데도 안되던걸, 협력학습 모델, 직소우, 토론 수업 이런 저런 방법 다해봤다고. 학교에서는 마일리지 제도도 운영하는데…’라고 생각하지만 겉으로 ‘네, 그런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라고 대답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론 타인이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행위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자신의 무능함과 연결짓기도 합니다. ‘내가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업협의회는 늘 우리에게 불편하고, 조언이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고민을 갖고 있다는 것은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다소 불안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는 보통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대화를 시작하게 만들려면 대화의 공간이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느껴야 합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해결책의 제시가 아닌 경청과 공감입니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면 그 대화에 함께 머물며, 자신의 고민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상대의 말을 공감 및 반영하거나, 생각을 명료화하고 자신의 고민 이면의 목표를 탐색할 수 있도록 질문하거나, 자신의 생각에 직면할 수 있도록 반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대화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A : 수업에서 몇 몇 학생들이 아무것도 안하는게 고민이예요.
B : 맞아요. 수업을 열심히 준비해가도 학생들이 아무 반응도 없으면 정말 기운이 빠지죠. 선생님은 그럴 때 어떠세요?
A : 저도 그래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요.
B : 선생님은 학생들이 아무것도 안한다는 걸 어떻게 확인하세요?
A : 네? 음… 그러니까… 제가 학습지를 나눠주고 1번 과제를 해결하라고 했는데 몇 몇 학생들은 학습지를 쳐다 보지도 않고, 몇 분이 지나도 전혀 진행된 것이 없더라구요.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자신의 고민을 나누는 대화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반영하거나, 공감해주면 보다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됩니다. 특히 감정을 표현하거나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면 대화할 준비가 되어가는 중이라 볼 수 있습니다. A교사는 아무 것도 안하는 학생들을 보며, 막막해 하고 있습니다. ‘몇몇 학생들이 아무것도 안해요.’ 라는 표현이 언뜻 보기에는 명확한 표현같아 보이지만, 다소 모호한 표현입니다. 이런 표현들을 다시 물어봐주면 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A교사의 발언으로 미루어보아 교사는 자신이 과제를 부여했을 때 학생들이 바로 시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A : 네? 음… 그러니까… 제가 학습지를 나눠주고 1번 과제를 해결하라고 했는데 몇 몇 학생들은 학습지를 쳐다 보지도 않고, 몇 분이 지나도 전혀 진행된 것이 없더라구요.
B : 선생님은 학생들이 과제에 바로 착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시는 거군요?
A : 맞아요. 근데 그게 잘 안되는거 같아요. 시작부터 안 되니 수업을 따라오지를 못하는 듯 해요.
B : 그렇군요. 열심히 준비하셨을텐데, 시작도 안하는 학생들을 보면 속상하시겠어요. 선생님 생각하시기에 학생들은 왜 시작을 못하는 걸까요?
A : 흠 …. 그러게요. 제가 학생입장에서 잠시 생각해봤는데, 어떤 학생들은 학습지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거나,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모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교사의 고민에서 교사가 원하는 것이 ‘학생들이 과제에 바로 착수하게 되는 것’으로 보다 구체화 되었습니다. 보통 수업에서의 고민은 그 주체가 학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학생입장에서 생각해본 경험은 부족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자신의 고민을 학생들의 문제로 보지 말고,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고민의 진짜 목표를 찾아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A교사는 자신의 과제가 어떤 학생들에게는 시작하기에 버거울 수 있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며 대화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A : 흠 …. 그러게요. 제가 학생입장에서 잠시 생각해봤는데, 어떤 학생들은 학습지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거나,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모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B :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A : 제가 제시한 과제가 앞에서 배운 내용들을 잘 알고 있어야 가능한 거 같은데, 앞선 수업에서도 학습이 잘 일어나지 않은 학생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못할 거 같아요.
B : 선생님은 학생들이 선행 지식이 좀 부족하더라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시는 건가요?
A : 네, 그렇게 수업을 구성하면 좋겠어요.
A선생님은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화를 통해 모든 학생들이 과제를 시작할 수 있도록 수업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물론 아직 그 구체적인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A선생님은 앞으로 수업을 준비할 때, 자신이 생각하는 수업의 흐름이 선행지식이 부족한 학생들도 시작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수업 속 고민을 나눌 때, 단순히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하거나 나열하는 경우 그 해결방법이 고민과 닿아 있지 않고 다소 피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민에서 목표를 드러낸 후 방법을 찾는 다면 좀 더 구체적이고 해결 가능성이 높은 방법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단순히 고민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일반적인 방법론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목표를 세웠다면 오늘 수업에서 다룰 소재를 어떻게 하면 모든 학생들이 접근 가능하도록 재구성할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고 경험이 교사의 교육과정 해석 및 재구성의 역량을 신장시킬 것이고, 교사가 직면하는 여러 고민들을 해결하는 힘을 길러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반면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잘 가르치면 잘 배우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혹은 '학생들을 잘 배우게 하기 위해서 잘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을 준비할 때, 학생들이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수업준비와는 사뭇 다른 방식입니다.
2022 개정교육과정의 중학교 수학의 첫 번째 성취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9수01-01] 소인수분해의 뜻을 알고, 자연수를 소인수분해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성취기준이 위와 유사한 형태로 쓰여 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소인수분해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들을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PPT를 만들거나, 이해가 쉽게 되도록 설명을 구성하거나, 적절한 활동을 만들기도 합니다. 잘 가르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떠올리는 것은 선생님들에게 아주 익숙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학생들은 소인수분해의 뜻을 알게 될까요? 혹시 '소인수분해의 뜻을 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본적이 있나요? 선생님이 수업하고 있는 성취기준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성취기준에서 이야기하는 ‘이해한다, 할 수 있다.’ 등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학생들은 어떻게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이 소인수분해를 정의합니다.
’소수인 인수를 소인수라고 하고, 1보다 큰 자연수를 그 수의 소인수들만의 곱으로 나타내는 것을 소인수분해라고 한다.’
이것을 암기하고 있는 것이 소인수분해의 뜻을 아는 걸까요? 대부분 선생님들은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시지 않을 겁니다. 무엇인가 이해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단숨에 일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적절한 경험의 누적으로 어느 순간 이해의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 적절한 경험들을 수업에서 학생들이 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수업 준비입니다.
만약 아주 단순한 개념이고, 그저 한 번 읽어보기만 하면 되는 내용이라면, 교사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읽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이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소인수분해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교과서의 저 정의를 여러번 읽는 것으로 성취되지 않습니다. 그럼 학생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학생이 무엇을 경험해야 학생들이 소인수분해를 이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까요?
이를 위해서는 교사는 여러 고민을 해보아야 합니다. '소인수분해는 무엇인가?', '소인수분해는 왜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가?', '소인수분해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인수분해를 이해한 학생은 어떤 상태인가?', '이해에 도달하려면 학생들은 무엇을 경험해야 하는가?’ 소인수분해는 하나의 예시에 불과합니다. 각자 수업할 내용에 적용하여 위의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랍니다.
같은 내용에 대해 고민하더라도 선생님마다 서로 다른 답변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의견은 학생들에게 수학적 도구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이 의미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소인수분해를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280,280의 모든 약수를 구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는 1부터 차례대로 280,280을 나누어 보며 나누어지는지 확인하면 됩니다. 아주 번거롭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도구가 필요함을 느낍니다. 여기에 적절한 활동을 구성하여 '소수'라는 개념을 스스로 구성하고, 소수로 수를 분해하여 표현하는 것이 강력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학생들이 소인수분해를 이해하게 만드는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가능성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학습의 주체는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의 배움은 주입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구성해 나갑니다. 단, 경험이 학생들의 활동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텍스트를 읽는 것도, 연습문제를 푸는 것도 모두 경험에 포함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적절히 구성하고 배치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배움의 가능성을 높이는 경험은 무엇인지 탐구해야 하고, 어떤 순서로 경험하는게 효율적일지 끊임없이 사고 실험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최대한 많은 학생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처럼 기존의 교사가 잘 가르치는 것이 학생을 잘 배우게 만든다는 관점에서 학생이 잘 배우기 위해 필요한 경험을 교사가 구성해주는 관점으로 전환하여 수업을 준비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는 단지 학생들을 진정한 배움으로 이끄는 도구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고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됩니다. 학생들은 왜 어려움을 겪는지, 왜 수업을 재미없다고 하는지, 어떻게 배워야 즐겁게 배울 수 있는지 조금씩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수업에서 학생들이 경험할 요소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성취기준에 대한 교사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이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수업을 흘러가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소인수분해를 이해한다 -> 소인수분해를 계산할 수 있다. -> 익숙해 지면 된다. -> 쉬운 계산 방법을 알려주고 반복하게 만들자.
와 같이 해석하고 단순 반복 형태의 문제를 많이 제공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스스로 위의 방법이 본인에게 적합한지, 적합하지 않은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기준을 먼저 정해두고 수업을 준비해야 합니다. 잠시 아래의 질문들에 대해 답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수업을 하고 싶나요?
선생님의 담당 과목을 학생들이 배우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은 어떻게 배우나요?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이 수업을 설계할 때, 내가 바라는 방법을 선택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기준이 될 것입니다. 수학을 담당하는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회복하는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호기심 가득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학교 생활을 하며 학생들의 호기심은 사라지고 배우는 것이 과업처럼 느껴지는 듯 합니다. 학교라는 공간이, 특히 수업은 학생들에게 배우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할 수 있는 학생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목표에 수학은 꽤나 적합한 과목입니다. 수학은 복잡한 상황을 간결하게, 그리고 어려운 과제를 보다 쉽게 만들어 줍니다. 학생이 자신의 과제를 수학을 통해서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학생은 다시금 배움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따라서 수업도 학생이 수학적 개념이 필요해지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이 해결하기 어려워 답답하고 막막한 순간에 적절한 도구를 수학이 제공하여 주거나, 더 나아가 스스로 그러한 도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수학을 배우고, 행할 것이며, 배움의 행위의 가치를 느끼게 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의 경우는 소인수분해의 이해를 앞서 제시한 해석 처럼 진행하여 반복하여 다량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 방법은 학생들이 소인수분해를 잘 해낼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학생들에게 또 다시 배움을 멀리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할 경험을 선택할 때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수업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의 부합여부가 수업에서 학생에게 제공할 경험을 선택하는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수업을 준비할 때 이러한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드뭅니다. 수업을 준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교과서의 순서를 따르되 학생의 흥미를 유발하거나, 추가적인 활동을 구성하는 방법입니다. 혹은 다른 사람이 만든 학습자료의 흐름을 따라가며 약간의 변형을 취합니다. 이처럼 이미 만들어진 흐름에 내가 아는 좋은 방법들을 추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로 만들어진 수업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수업에 부합하는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내 수업에 대한 목표를 고민하지 않고 수업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목표가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최신 유행하거나 좋아보이는 방법을 먼저 선택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적용하면 학생들에게 메타인지 이동이 많이 발생합니다. 학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도구에 학생들은 수업 중 활기차 보이긴 하지만 실제 기대하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우리에겐 ‘무엇을’ 수업에 활용하는지보다 ‘왜’ 이 수업을 해야하는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최근 화두인 AI, 메타버스 등을 이용하는 것보다 지금 나의 수업은 ‘왜’ 학생들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합니다. 수업에 사용할 도구를 선정하고 그 도구에 내 수업을 맞추는 일은 내 수업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일입니다. 내가 원하는 수업의 목표로 부터 시작해서 그 목표가 달성가능하게 만드는 학생들의 경험을 찾고, 그러한 경험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을 최종적으로 선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도구가 선택된다면 자연스럽게 메타인지 이동이 일어날 위험이 있는 순간에 대해 교사는 이미 고려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수업을 준비할 때 먼저 자기 자신을 성찰하며 학생 경험 선정의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수업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명확히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수업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면 영역(혹은 단원)별 목표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육과정에서 제시되는 목표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수업의 모습에 비추었을 때, 해당학년의 해당영역은 왜 배워야 하는지, 학생들은 이 영역의 학습을 통해 어떤 성장이 가능한지, 학생의 입장에서 영역의 목표를 설정합니다.
예를 들어, 중학교 3학년은 수학시간에 수와 연산 영역에서 제곱근과 실수를 배웁니다. 무리수라는 새로운 수가 추가되며 학생들의 수 체계가 확장되는 시기입니다. 이 때,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수 체계로 확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일입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이 처음 무리수를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을 학생들도 경험하길 바랍니다. 이러한 감정은 배움에 대한 강한 내적 동기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습 동기로 새로운 수를 정의하고, 기존의 수와 함께 사용하며 그 유용함을 실제로 느낀다면 수와 연산 영역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각 영역의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경험과 성장을 중심에 두고 작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의 이동이 쉽지 않습니다. 배움보다 가르침에 익숙한 문화 때문에 의식적으로 학생들의 입장에서 목표를 설정하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또한 영역의 목표는 자신이 목표로 하는 수업의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수업을 위해 해당 영역의 수업도 진행하는 것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수업의 목표에서 영역의 목표로 이동 했으니, 이제 더 작은 단위에서 목표를 설정해 볼 차례입니다. 더 작은 단위로 떠오를 만한 것은 각 차시 수업 목표일테지만 수업이라는 것이 45분마다 정확히 끊어서 진행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고, 시간을 너무 엄격히 맞추려고 하다보면 진짜 이루고 싶은 목표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선 학생들이 학습해야 할 요소를 바탕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수업으로 구성해보기를 바랍니다. 즉, ‘1차시에는 이걸 가르쳐야지.’ 라고 수업을 설정하는 것이 아닌, 이 요소를 학생들이 잘 배우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순서로 수업을 구성해야겠군.’이라는 생각 하에 충분히 수업을 구성하고 차시는 수업의 구성이 완료된 후에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학습 요소는 어떻게 선정할까요? 저는 교과서를 최대한 멀리하기를 요청드립니다. 교과서는 학습 요소 뿐만 아니라 수업의 순서까지 이미 정해놓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수업을 설계하는 것은 교과서의 흐름대로 수업을 구성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교과서는 덮어두고,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성취기준만을 살펴보길 권합니다. 하지만 이 성취기준 역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앞서 소인수분해의 성취기준을 재해석 해보았듯이, 교과서의 성취기준을 선생님이 원하는 수업의 목표, 해당 영역을 학생들이 학습하는 이유에 부합되도록 성취기준을 재해석해야 합니다. 영역의 목표를 수립할 때와 마찬가지로 성취기준을 학생들에게 필요한 경험이나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성장을 중심으로 작성하면 도움이 됩니다. 중학교 3학년 수학의 제곱근의 뜻을 알고 무리수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성취기준은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9수01-07] 제곱근의 뜻과 성질을 알고, 제곱근의 대소 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
[9수01-08] 무리수의 개념을 이해하고, 무리수의 유용성을 인식할 수 있다.
제곱근의 뜻을 알고 무리수의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새로운 수의 발견을 경험하는 것과 직접 발견한 수를 도입하는 경험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제곱해서 2가 되는 수의 존재성을 직접 활동을 통해 확인하고, 이렇게 발견된 수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유리수 체계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새로운 수 체계를 정의할 필요성을 느끼고, 제곱근을 이용한 표현의 유용함을 경험해야 합니다. 기존의 교육과정처럼 제곱근의 정의를 먼저 제공하는 것이 아닌 학생들이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은 제곱근을 스스로 정의하고, 그에 따른 다 양한 성질들을 주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취기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명확해지면, 그를 위한 수업을 개발해야 합니다. 수업은 한 번에 완벽하게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고 실험을 하더라도 실제 수업에서 펼쳐지는 모든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수업을 적용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조금씩 다듬어 나간다고 생각하시고, 다소 이 과정이 어렵게 느껴지고,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더라도, 시도를 해보아야 합니다.
수학, 과학, 사회 등 교과목에서 새로운 개념이나 원리에 대한 내용들은, 그 개념이나 원리의 발생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학생들의 경험을 선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필요에 의해 학자들은 이러한 개념이나 원리를 사용하고 발견하게 되었는지, 그것은 왜 꼭 있어야만 했는지, 그러한 상황을 학생들의 수준으로 적절히 변형하여 비슷한 상황에 학생들이 놓일 수 있는지 상상해 보면 좋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학생들이 겪게 될 어려움을 사고 실험하고, 필요한 어려움과 제거해줘야만 하는 어려움을 구분하여, 학생들에게 적절한 장애물을 학습과정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과목에 따라 기능의 숙달이나 반복적인 경험 자체가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만약 반복적인 경험이라면, 단순히 반복 시키겠다는 계획이 아닌, 학생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해야 지속적으로 수행하며, 수행할 수록 더욱 더 내적동기가 강화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수행할 행위 자체에 대한 고민 뿐만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지속시키고 강화시키는 경험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며, 이러한 고민의 결과가 자신의 교육목표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합니다.
수업 준비를 하며 학생 한 명 한 명을 떠올려 보세요. 아마 내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수업을 성취하지 못할 것 같은 학생들이 떠오르실 겁니다. 그런 학생들이 많이 떠오른다면, 너무 어려운 걸 가르치는 건가? 학생들에게 굳이 이런거까지 필요할까? 하면서 수업을 보다 쉽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쉽게 만드는 것은 자칫 원래 추구하던 수업의 목표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쉽게 만드는 것은 실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 보다 교사의 자기 만족을 위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학생을 보고 있는 것 보다 낮은 수준의 단순 형태의 반복이라도 시켜 수업에 참여하게 만들고 싶은건 아닌지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과정이 중요하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와 상관없이 형성평가를 해결하지 못하는 학생을 보면 수업은 실패했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만약 수업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이러한 결과가 신경쓰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떻게든 학생들이 최종 결과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런 마음은 때론 단순히 베껴서 답을 적는 행위에 대해서도 학생의 성취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원래 학생들이 배우기 위해 행해야 할 경험은 진행되지 않더라도 최종 결과물은 완수한 학생들을 보면 교사는 쉽게 안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학생들의 결과적 행위가 아닌 학생들의 경험적 과정 속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교사가 의도한 학습경험을 경험했는지 여부입니다. 우리는 많은 고민과 노력 끝에 학생들이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경험을 구성하였습니다. 그 경험을 학생들이 수행하였다면 현재 교사 수준에서는 가장 베스트의 수업을 진행한 것입니다. 물론 동일한 경험을 학생들이 행하더라도 학생에 따라 그 결과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학생에 따라 목표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고, 이는 또 다시 교사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지점으로 삼으면 충분합니다. 이러한 교사의 태도는 학생에게도 유익합니다. 학생들에게도 진정한 배움은 교사가 나누어준 자료의 빈칸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합니다. 배움을 위한 의미있는 경험자체가 소중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경험의 누적은 학생들에게 배움이 본질적으로 가지는 즐거움을 알게합니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먼저 학생들의 가능성을 믿어보시기 바랍니다. 지속적으로 성장가능한 경험을 학생에게 제공한다면 모든 학생들이 언젠간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상상한 목표 이상으로 수업에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더 크고 더 넓게 학생의 성장을 상상하면 좋겠습니다. 눈앞의 만족을 위해 학생을 작은 울타리에 가두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목표는 되도록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하게 설정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모든 학생들이 성장가능 합니다. 이 때, 목표가 결과로 생각하면 제 의미가 왜곡되어질 수 있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더 큰 목표가 아닙니다. 목표는 학생들이 무엇을 경험해야 하는지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24를 소인수분해하는 것보다 345,232와 같이 큰 수를 소인수분해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수업 속에서 ‘학생들이 소수가 이래서 필요한거구나!’라는 ‘아하!’의 순간이나, ‘소수를 이용해서 수를 분해하면 정말 유용해. 내가 직접 한거야!’ 라는 만족감 등이 목표로 삼아져야 합니다.
이러한 내적 동기가 자극되도록 수업을 구성하고, 그러한 자극이 쌓이고 쌓인다면, 학생들은 어느새 훌쩍 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떻게?’에 대한 고민은 남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경험을 제공하려고 해도 학생들이 시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론, 선생님이 의도한 대로 학생들이 경험했음에도 학생들은 아무런 성장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다양한 변수가 수업에는 존재하고, 아주 미묘한 상태 변화가 학습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묘한 변화는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은 알아차리기도 어렵습니다. 아니 사실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은 교실의 상황의 아주 일부분만 자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수업을 함께 보고, 자신의 수업을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친구는 수업자가 자신의 수업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하며, 수업자의 수업 목표에 비추어 자신의 수업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주의해야할 점도, 연습해야할 일도 있습니다. 이를 익혀서 먼저 주변 동료 선생님들의 수업친구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