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두 번째 수업공개를 진행했다.
그리고 문득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나에게 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수업을 매월 공개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하기 위해 무작정 전남의 모든 중학교에 공문을 발송했다.
난 가끔 이렇게 먼저 일을 벌려 놓는 타입이다.
1정연수가 끝나고도 그랬다. 1정 연수 책자 뒤에 있던 1정연수 참석자 명단의 선생님들에게 업무메일을 보냈었다. 함께 수학교육을 공부하자고.
그렇게 시작된 모임이 함께 하는 사람은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그 모임이 있기에 아마 올해 수업을 주저없이 열게 된 것 같다.
초반의 모임은 소수의 선생님과 함께 했다. 그리고 굳이 인원을 더 늘리려는 생각도 없었다.
깊이 있게 대화나누고, 모여서 모두가 의미있는 시간을 가지려면 많은 사람이 오히려 방해된다고 생각했다.
5명만 넘어가도 대화에 소외가 발생하는 듯 했다.
적은 수의 선생님과 더 많이 대화나누고 함꼐 고민해야 논의의 방향을 유지한채 의미있는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분명 의미가 있었고, 나를 충족시켜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는 성장했다고 믿는다.
내가 만나는 학생과 함께 하는 선생님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면 난 나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거라고 굳게 믿어왔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그 이상은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변명처럼 얘기하자면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내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언제부터일까? 새로운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지금껏 내 개인의 성장에만 맞춰져있던 시선이,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식물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고, 퍼트리는 것과 비슷할까?
아직은 내가 피운 꽃이 아름다운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스스로 어떠한 꽃을 피웠다고 생각한거 같다.
그리고 자연의 이치처럼 그 씨앗을 퍼뜨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듯하다.
그리고 씨앗을 여기저기 나르기 위한 과정으로 올해 수업을 열게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두 차례 수업나눔을 진행하면서 달라진 점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수업을 나누는 과정을 수업자의 성찰을 지금껏 최우선의 목표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가 수업하고 수업나눔을 직접 진행하는 상황에서, 나는 나의 성찰을 돕기 위해 선생님들과 수업나눔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른 사람의 수업을 보고 수업나눔의 진행자의 역할에 있을 때는 주로 수업자가 흔들리는 지점에 머무르며 성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진행했다.
하지만 오늘 수업나눔에서 나눈 여러 대화들은 내가 흔들리지 않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수업에서 몇 가지 굳건한 믿음들이 있다. 오늘 수업에서 나눈 내용과 관련된 생각들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흔들리지 않는 지점이 다른 선생님의 시선에서는 다르게 비칠 수 있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지점이라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의 과정으로 여길 수 있었다.
내 수업에서 흔들림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제곱근의 성질을 이용하여 풀 수 있는 문항들이 무엇이 있을까 라는 물음에, 한 학생이 '전부 다요.'라는 이야기를 한 지점이 기억에 남는다.
이 학생의 짧은 답변에서 나는 이 학생은 '완전제곱식으로 변형해서 하면 모두 다 풀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걸로 들렸다.
실제 그 학생이 하고 싶은 말은 그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하기 위해 제작된 학습지가 뒷편에 있었다.
나에겐 학생의 발표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계획된 흐름대로 다른 학생들이 완전제곱식의 변형할 필요를 느끼게 하는 것이 모두 중요하다고 여겼다.
짧은 순간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욕심을 부렸다. 계획엔 없었지만 그 학생을 발표를 시키고, 그 내용이 원래 계획한 수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수업해보기로.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수업을 해볼 수 없기에 뭐가 더 좋았는지, 나의 욕심을 수업에서 잘 풀어나갔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선택의 순간, 여러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은 수업에서 실현되고 나머지 선택지는 실현되지 못하므로, 사실 어떤 선택지가 더 좋은지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그러한 순간들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 같다.
최선의 답안이 존재했다면, 답을 찾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에 그 선택의 순간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학생들이 더 많이 소통하고, 그 소통이 서로의 배움에 도움되는 것이라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함께 교류하고 학습하는 것이 아직은 미숙해보이는 학생들에게, 소통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내려진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이 참 멋지네요. 학생들과 함께하는 선생님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그리고 학생들이 자신의 언어로 배움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마음가짐이 정말 감동적입니다. 계속해서 열정적으로 나아가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