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이 교육과정에서 가장 많이 보는 것은 단연 ‘성취기준’입니다. 교육과정에서 성취기준만 살펴본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대부분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성취’를 고민합니다. ‘[9수01-10]근호를 포함한 식의 사칙계산을 할 수 있다.’, ‘[9수02-12]다항식의 곱셈과 인수분해를 할 수 있다.’와 같은 성취기준들을 보며,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이와 같은 결과를 수행하게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많은 양의 계산문제를 제공하거나 반복적인 훈련을 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면 교사의 수업은 성공했다고 여기며, 성공한 학생들은 스스로 수학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알고 있습니다. 수학적 규칙이나 공식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암기해서 적용하는 수준에 학생들을 머무르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 알지만, 결과가 중요하다는 생각, 학생들을 결과적으로 성취기준에 도달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버티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원리를 설명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는 쉽고 빠른 방법만을 강조하며 수업한 경험이 수학 교사라면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선생님들은 너무 많이 짊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은 학생에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라고 자주 말하곤 하지만 수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이 말은 설득력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선생님의 모습에 대한 증거를 찾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과장하여 말하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해.’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모두 결과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수업에서 전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이 아닌 학생들의 수업 과정에 대한 책임을 선생님들은 짊어져야 합니다. 교육과정이 선생님들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은 학생들의 결과적 모습이 아닌 의미있는 수업의 과정이이야 합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살피던 중 반가운 변화가 눈에 띄었습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중학교 1학년과 관련된 성취기준은 24개가 존재합니다. 이 중 저의 눈길을 끈 것은 아래와 같은 6개의 성취기준이었습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 | 2022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 |
[9수01-03]양수와 음수, 정수와 유리수의 개념을 이해한다. | [9수01-03] 다양한 상황을 이용하여 음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양수와 음수, 정수와 유리수의 개념을 이해한다. |
[9수02-01]다양한 상황을 문자를 사용한 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 [9수02-01] 다양한 상황을 문자를 사용한 식으로 나타내어 그 유용성을 인식하고, 식의 값을 구할 수 있다. |
[9수03-01]순서쌍과 좌표를 이해한다. | [9수02-05] 순서쌍과 좌표를 이해하고, 그 편리함을 인식할 수 있다. |
[9수04-01]점, 선, 면, 각을 이해하고, 점, 직선, 평면의 위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 [9수03-01] 점, 선, 면, 각을 이해하고, 실생활 상황과 연결하여 점, 직선, 평면의 위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
[9수05-06]중앙값, 최빈값, 평균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구할 수 있다. | [9수04-01] 중앙값, 최빈값의 뜻을 알고, 자료의 특성에 따라 적절한 대푯값을 선택하여 구할 수 있다. |
[9수05-03]공학적 도구를 이용하여 실생활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표나 그래프로 정리하고 해석할 수 있다. | [9수04-04] 통계적 탐구 문제를 설정하고, 공학 도구를 이용하여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고, 그 결과를 해석할 수 있다. |
위 밑줄친 부분의 변화가 저는 반가웠습니다. 아직은 일부의 성취기준에서만 보이고, 2학년 3학년으로 갈수록 그 비율도 줄어들지만, 의미있는 변화라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으로 성취기준에 수업에서 진행되어야 할 학생들의 경험을 담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결과가 아닌 학생들이 배움을 위해 필요한 경험이 적혀있습니다. ‘음수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경험’, ‘문자를 사용해보며 그 유용함을 인식하는 경험’, ‘기본 도형을 실생활과 연결하여 생각하는 경험’, ‘자료의 특성에 대해 고민하고 적절한 대푯값을 선택하는 경험’을 수업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요구하는 성취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결과만을 제시하는 성취기준에서 벗어나 성취가 가능해지기 위해 필요한 학생들의 경험을 포함하는 성취기준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양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보완되고 추가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성취기준이 좀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만은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들이 각자의 기준을 만들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잘 배울 수 있는 과정을 담은 기준. 이름하여 ‘배움을 위한 과정기준’을 세워보는 것입니다. 이는 의미있는 수학적 사고가 진행되며, 학생들이 잘 배우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학생의 경험을 선정하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배움의 주체가 학생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배움의 주인이 학생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배움의 주체를 학생으로 여기고 있는지는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학생의 입장에서 수업을 준비해 본 경험이 없는지는 생각보다 쉽게 드러납니다.
‘[9수01-07] 제곱근의 뜻을 알고, 그 성질을 이해한다.’가 가능해지려면 학생은 무엇을 해야할까요? 학생이 제곱근을 제대로 배우게 되려면 수업에서 무엇을 경험해야 할까요? 어떤 사고과정이 학생이 제곱근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일까요?
위와 같은 질문에 쉽게 답이 가능하신가요? 혹은 이런 고민을 통해 수업을 준비하시나요? 일반적으로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까?’를 고민합니다. 혹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이해하게 만들까?’를 고민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잘 살펴보면 교사 주도적 사고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수학적 개념의 이해에 대한 평가를 교과서 문제의 해결여부에 둠으로써, 학생의 사고 과정보다 학생의 수행 결과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말 필요한 고민은 사실 ‘학생이 수업 중 무엇을 경험해야 하는가?’입니다. 대부분의 지식은 단순히 설명을 듣는 것으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특히 수학적 개념은 더욱 그러합니다. 학생들에게 개념이 형성되기 위해 필요한 경험들이 무엇인지, 어떤 사고의 흐름을 거쳐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 고민의 결과를 ‘배움을 위한 과정기준’으로 표현해보길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습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 | 배움을 위한 과정기준 |
[9수01-07] 제곱근의 뜻과 성질을 알고, 제곱근의 대소 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 | 무리수를 발견하는 경험과 발견한 수의 표현방법에 대한 논의를 통해 제곱근의 뜻과 성질을 이해하게 한다. 추가설명) 무리수의 발견은 계산기 등으로 제곱근의 값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구성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계산한 수가 순환하지 않는 무한소수일 것이라는 강한 추측을 갖게하며, 그 추측을 통해 새로운 기호(근호)가 필요하다는 걸 인식하게 한다. |
[9수01-08] 무리수의 개념을 이해하고, 무리수의 유용성을 인식할 수 있다. |
제곱근의 뜻과 성질을 학생들이 안다는 것은 단순히 ‘ 일 때, 를 의 제곱근이다.’라고 말할 수 있거나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개념의 이해는 그 결과를 판단하는데 중점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수학적 개념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학생의 경험에만 주목하면 충분합니다. 개념 획득의 주체는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주체가 개념을 잘 생성할 수 있도록 적절한 경험을 수업 중 구현해 주기 위해 교사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생들이 수업중에 무엇을 해야, 더 높은 확률로 더 많은 학생들이 제곱근의 개념을 획득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제 고민에 대한 저의 답은 학생들이 무리수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호의 필요성을 깨닫는 것이 제곱근의 개념을 획득하는 가장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들어, 넓이 2인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탐구합니다. 1보다 크고 2보다 작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생각하면 1.4보다 크고 1.5보다는 작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계산기(오직 곱셈을 빠르게 하기 위한)를 이용하여 이 아이디어를 빠르게 진행하면 1.41보다 크고 1.42보다는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계산기가 허락하는 소수점 아래 자릿수까지 계산하다보면 ‘순환하지 않는 무한소수’라는 개념에 학생들은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설명이나 텍스트로 제시하는 것보다 계산기를 누르는 경험에서 무리수 개념의 획득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순환하지 않는 무리수의 발견은 근호의 도입을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실존하는 넓이 2인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간단하게 표현할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고 과정 자체가 수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볼 수 밖에 없는 성취기준은 ‘배움을 위한 과정기준’과 같이 더 많은 수업의 과정적 요소를 담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수학 수업을 과정중심 수업과 과정중심 평가로 변화시키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너무 늦은 감이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과정중심평가를 강조했지만 평가의 기준이 되는 성취기준에 과정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학생의 성취기준이 결과에만 머무르지 않고 ‘과정’에 있어야 과정중심평가가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의 과정중심평가는 성취기준의 도달이 지필평가 이외의 방식으로 도달했는지 중간에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해 보입니다. 과정자체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시도가 없는 것이죠. 그 원인은 물론 성취기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성취를 ‘과정을 경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도록 성취기준이 변화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과정중심평가가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배움을 위한 과정기준이 성취기준을 대체하여, 학생들의 성취를 판단할 때, 학생들이 겪은 과정의 질을 살피는 교육문화가 언젠가는 만들어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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